“화장품인 줄 알았는데, 의료기기라고요?”

지난달 급한 전화 한 통이 걸려왔다. 국내 유명 뷰티 디바이스 브랜드 대표였다. 미국 출시를 앞두고 갑자기 FDA에서 자사의 LED 마스크가 의료기기라며 추가 승인을 요구한다는 것이었다. 이미 수억 원을 투입한 마케팅 캠페인과 유통업체와의 계약까지 체결한 상황에서 예상치 못한 규제 장벽에 부딪힌 것이다.
이런 일은 결코 드물지 않다. 최근 K-뷰티 열풍과 함께 국내 뷰티 디바이스들이 미국 시장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지만 많은 브랜드들이 제품 출시 직전에 예상치 못한 규제 문제에 직면한다. 바로 자신들의 제품이 단순한 화장품이 아닌 FDA 의료기기로 분류된다는 사실을 뒤늦게 발견하는 것이다.
화장품과 의료기기, 그 미묘한 경계선
FDA는 제품의 의도된 용도(Intended Use)와 작용 메커니즘을 기준으로 화장품과 의료기기를 구분한다. △ LED 마스크 △ 초음파 클렌징 디바이스 △ RF(고주파) 리프팅기 △ 마이크로커렌트 마사지기 등 전자 기능이 있는 뷰티 제품들은 대부분 의료기기로 분류한다. 이는 단순히 피부에 바르는 화장품과 달리 전기 에너지나 물리 작용을 통해 인체에 영향을 미치기 때문.
특히 주목할 점은 마케팅 문구가 제품 분류에 결정적 영향을 미친다는 데 있이다. 즉 ‘피부 톤 개선’이나 ‘혈액순환 개선’ ‘주름 완화’와 같은 표현을 사용하면 미용 목적을 넘어 의료 효과를 주장하는 것으로 해석해 의료기기로 분류할 가능성이 높아진다.
따라서 이런 제품들은 MoCRA(화장품규제현대화법)가 아닌 의료기기 규정을 따라야 한다.
FDA 의료기기 3단계 분류 체계의 실체
FDA는 의료기기를 인체에 미치는 위험도에 따라 Class I·II·III 세 등급으로 나눈다. 이 분류는 단순히 제품의 기술 상 복잡성이 아닌 ‘환자나 사용자에게 미치는 잠재 위험도’를 핵심 기준으로 한다.
■ Class I: 저위험 기기의 상대적 자유로움
전체 의료기기의 약 47%를 차지하는 Class I은 가장 기본적인 규제만 적용받는다. 대표 예로는 일회용 장갑·붕대·수동 청진기·혀 누르개 등이 있다. 뷰티 분야에서는 단순 진동 마사지기나 수동 페이셜 롤러가 여기에 해당한다.
Class I 기기의 가장 큰 장점은 시판 전 승인(510(k) 또는 PMA)이 대부분 면제(Exempt)된다는 점이다. 즉 복잡한 임상시험이나 장기간의 승인 대기 과정 없이도 시장 진출이 가능하다. 하지만 여전히 제조업체 등록(Establishment Registration)과 기기 목록 등재(Device Listing)는 필수다. 이 과정은 일정비용이 소요되며 매년 갱신해야 한다.
■ Class II: 중위험 기기의 복잡한 요구사항
전체 의료기기의 43%를 차지하는 Class II에는 휠체어·콘택트렌즈·임신 테스트기·전동 수술대 등이 포함된다. 뷰티 디바이스 중에서는 LED 광치료기·고주파 피부관리기·초음파 클렌징 디바이스 일부가 해당될 수 있다.
Class II 기기는 일반 규제(General Controls)에 더해 특별 규제(Special Controls)를 적용한다. 대부분 시판 전 신고(510(k) Premarket Notification)를 통해 기존 승인된 제품과의 ‘실질 동등성’(Substantial Equivalence)을 입증해야 한다. 이 과정에서 임상데이터나 성능시험 결과, 생체적합성 시험 등이 요구될 수 있어 Class I보다 훨씬 복잡하고 비용이 많이 든다.
■ Class III: 고위험 기기의 엄격한 관리
전체의 약 10%만 차지하지만 가장 엄격한 규제를 받는 Class III에는 심장박동기·유방 보형물·인공 고관절 등 생명과 직결된 기기들이 포함된다. 뷰티 분야에서는 △ 영구 피부 필러 또는 △ 강력한 레이저 시술기 일부가 해당할 수 있다.
Class III 기기는 시판 전 승인(PMA·Premarket Approval)이 필수다. 이는 신약 허가와 유사한 수준의 대규모 임상시험과 안전성 데이터를 요구한다. 개발부터 승인까지 수년이 걸리고 수십억 원의 비용이 소요되는 것이 보통이다. 따라서 일반 뷰티 디바이스로는 현실을 감안하면 접근하기 어려운 영역이다.
<정연광·FDA화장품인증원 대표 컨설턴트· expert@mocra.co.kr · www.mocra.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