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표권의 침해 여부를 다투는 사건에서 과연 상표법상 상표의 사용이란 무엇인지가 문제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원칙적으로 타인의 등록상표와 동일·유사한 상표를 동일·유사한 상품에 표시한 경우, 타인의 상표권을 침해한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러한 동일.유사한 표시가 해당 상품의 출처를 표시하는 기능으로 사용되지 않는 경우 등과 같이 상표의 기능이 발휘되지 않는 경우에는 그와 같은 동일.유사에도 불구하고 상표의 침해가 인정되지 않게 됩니다.
이와 관련해 필자가 편의상 '고양이 전쟁'이라고 부르고 있는 사건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가필드(Garfield)는 1978년 미국에서 처음 등장한 캐릭터로 이 캐릭터의 권리자인 원고 회사는 1985년에 국내에 완구류를 주된 지정상품으로 하여 위 캐릭터의 전신을 도형으로 하여 도형상표로 출원, 1986년에 등록결정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국내 봉제완구 제조업자인 피고 회사가 1993년 11월경부터 1995년 1월경까지 큰 눈과 입을 가진 동물 머리모양의 동물완구를 판매하였고 이에 원고 회사는 피고 회사를 상대로 상표법위반죄로 형사 고소를 하였습니다.
이에 대하여 1심 법원에서는 상표권침해를 인정하였으나 2심 법원은 갑사(원고)가 등록한 도형상표는 고양이 캐릭터의 전신 도형임에 반하여 을사(피고)가 판매한 완구의 모양은 다리와 꼬리가 없는 모양이기 때문에 일반 소비자나 거래자로 하여금 이 사건 완구가 이 사건 등록상표와 같은 출처라고 오인· 혼동할 정도 유사하다고 보기 어렵다고 판단하여 동일·유사성이 없다는 이유로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하지만 대법원은 2심 법원인 대전지방법원과 그 결론을 같이 하면서도 “타인의 등록상표와 유사한 표장을 이용한 경우라고 하더라도 그것이 상표의 본질적인 기능이라고 할 수 있는 출처표시를 위한 것이 아니라 순전히 의장적으로만 사용되는 등으로 상표의 사용으로 인식될 수 없는 경우에는 등록상표의 상표권을 침해한 행위로 볼 수 없다”라고 판단하여 표시된 내용의 동일·유사성은 인정하면서도 이러한 표시가 해당 상품의 출처를 표시하는 기능으로 사용되지 않고 순전히 디자인적(의장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에 상표법상 사용으로 볼 수 없다고 보아 을사(피고)에 대하여 무죄를 선고하였습니다. (대법원 1997. 2. 14. 선고 96도1424 판결)
이상과 같은 판결은 출처 표시의 목적 없이 도형상표의 모양의 일부를 디자인으로만 유사하게 사용한 경우는 출처표시를 본질적 기능으로 하는 상표로서의 사용이라고 볼 수 없어 상표법으로는 처벌할 수 없다는 점을 명시한 판결입니다.
하지만 위 판결을 검토할 1997년 당시에는 가필드 캐릭터가 국내에 널리 알려져 있거나 충분히 상품화되지 않은 상태였다는 점을 감안할 필요가 있습니다.
만약 가필드 캐릭터가 지금과 같이 주지 또는 저명한 수준으로 인식되고 있는 상황이었다면 을사는 상표법 뿐만이 아니라 부정경쟁방지·영업비밀보호에 관한 법률 제 2조 제 1호 (가)목의 부정경쟁행위로 처벌될 수도 있었을 것으로 보입니다.
■ 안승훈 변호사 약력
△ 한국과학기술원(KAIST) 공학사
△ 서울대학교 대학원 공학석사
△ 충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법학전문석사
△ 뉴욕대학교(NYU) 쿠랑트(Courant) 응용수학 연구소·
스턴(Stern)경영대학원 협동과정 석사
◇ 주요 경력
△ 금융결제원 금융정보보호부 과장
△ 법률사무소 헌인 소속 변호사
△ 변호사 이석환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
△ 법무법인 서정 소속 변호사
△ 법률사무소 논현 대표변호사(현)
△ 강남경찰서 자문변호사(현)
△ 대법원 국선변호인(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