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자생식물에서 화장품 원료화 할 수 있는 비즈니스 모델을 구축하고 있는 (주)수이케이에 지난달부터 합류, 이를 위한 연구활동에 박차를 가하고 있는 정연옥 연구소장(농학박사).
1988년부터 지금 이 순간까지 34년을 넘도록 우리나라 전역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에 대한 연구에만 몰두해 온 ‘대한민국 토종·자생식물 전문가’다. 남으로 한라산에서부터 북으로 백두산에 이르기까지 정 소장의 발길이 닿지 않은 산과 들이 없다고 할 정도다.
“제가 지금까지 우리나라 자생식물을 연구하면서 단 한 번을 제외하고 지켜온 원칙이 있습니다. ‘식물의 뿌리는 손대지 않는다, 그 뿌리가 필요하면 돈으로 구입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얘기하면 누구나 ‘야생식물(화)을 연구하면서 뿌리를 뽑지 않으면서 어떻게 완전한 연구를 할 수 있느냐’고 되묻지만 뿌리와 꽃만으로도 충분히 그 효능을 알 수 있기 때문입니다. 웃을지 모르겠지만 야생화와 함께 지금껏 지내다보니 이제는 대화도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궂이 뿌리를 뽑지 않아도 그가 가지고 있는 효능·효과를 얼마든지 감지할 수 있게 됐지요.”
그런 그가 말하는 ‘단 한 번’은 언제였을까.
“남원시 자문교수를 할 당시였지요. 당시 남원시장의 요청이 지리산 식물로 압화를 만들어달라는 것이었는데,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뿌리까지 뽑지 않으면 안됐습니다. 당연히 거절했지요. 그런데, 요청도 요청이었거니와 지리산 자생식물로만 압화를 만드는 것도 또 다른 의미가 있겠다는 판단을 했습니다. 그래서 제 신념을 꺾고 지리산을 수 백 번 오르내리면서 450종의 자생식물을 채취해서 압화로 완성했지요. 지금 남원허브밸리 압화전시실에 있는 압화들이 그 성과물입니다.”
우리나라 자생식물과 야생화 연구를 하다가 화장품 원료화로는 어떻게 이어질 수 있었을까에 대한 궁금증이 생겼다.
“간단합니다. ‘먹어서 좋은 것은 발라도 좋다’는 단순한 원리와 명제지요. 박사 학위를 마치고 해외여행을 하는 과정에서 서양에서 흔히 얘기하는 ‘허브’(HERB)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됐습니다. △ H(Health) △ E(Eating) △ R(Refresh) △ B(Beauty)의 합성어로도 해석할 수 있는 이 허브에 대한 관심과 연구가 서양에 비해 많이 부족하다는 점에 주목할 수밖에 없었죠.”
현재 우리나라에서 자생하는 식물은 관상용·약용식물 등을 모두 합해 약 4천750여 종에 이른다. 학자에 따라 기준의 차이가 있을 수 있고 중복되는 경우도 있지만 정 소장은 초본으로만 약 3천700종 이상을 파악하고 있단다.
특히 정 소장이 가지고 있는 자부심 가운데 하나는 백두산 5회 종주를 하면서 파악한 ‘백두산 자생식물 70종’을 보유하고 있다는 것. 국내에 들여올 때, 지금은 웃으면서 얘기할 수 있지만 당시에는 말로 글로 다 설명할 수 없는 사연의 연속이었다.
그래서 그의 평생 숙원사업이 ‘한라에서 백두까지 우리나라 자생식물 지도’를 만드는 일이 되고 말았다.
지금도 주말이면 지리산(여기에도 자신의 거처가 있다)으로 직행, 산자락을 헤매면서 야생화와의 시간을 갖는다. 흔히 말하는 천성이요, 팔자요, 타고났다는 말이 제격이다.
“수이케이에 합류했으니 수이케이에서만 만들 수 있는 원료, 특히 지리산 원물을 중심으로 한 화장품 원료를 만드는데 역점을 둘 것입니다. 특히 전통발효 방법·기술을 이용해 차별화를 완성함으로써 우리나라 화장품 원료산업화를 한 차원 높은 수준으로 끌어올릴 수 있는데 기여하고 싶습니다.”
정 소장의 눈 주름은 양쪽이 각각이다. 대학시절부터 사진반 활동을 시작해 지금까지 40년을 넘게 카메라를 목에 걸고 뷰 파인더로 야생식물의 모습을 담다보니 자연스럽게 생긴 ‘짝짝이 주름’이 돼 버린 것이다. 그래서 정 소장은 이 짝짝이 주름이 자신의 야생화 인생을 그대로 얘기해 주는 자서전 만큼이나 자랑스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