들어가는 글
지난 칼럼에서는 상표의 유사 판단과 관련된 대표적인 사례 열 가지를 살펴보았습니다.
이번 주부터는 조금 더 깊이 들어가서 상표의 유사 판단의 방법론 중 하나인 이른바 ‘요부관찰’이라고 불리는 법리가 문제되는 사안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요부관찰의 법리
상표의 유사판단에 대하여 다룬 첫 칼럼에서 상표의 유사판단 시 대비되는 양 상표를 전체로서 관찰하여 그 외관·호칭·관념을 비교 검토하여 판단함을 원칙으로 하고 구성요소의 각 부분 만을 추출하여 비교하는 것은 원칙적으로 허용되지 않지만 실무적으로 전체 관찰의 보완으로서 요부 관찰 내지는 분리관찰이 허용된다고 설명드린 바 있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요부란 '상표 중 일반 수요자에게 그 상표에 관한 인상을 심어주거나 기억, 연상을 하게 함으로써 그 부분만으로 독립하여 상품의 출처표시기능을 수행하는 부분'을 의미합니다.
다시 말해서 판례는 전체 관찰의 원칙을 표방하면서도 사안에 따라서 요부를 기준으로 상표의 유사 여부를 판단하고 있는 것입니다.
상표의 유사판단에 있어서 요부판단 방법 관련 사례
위 법리에 대한 이해를 돕기 위해서 요부관찰을 통한 유사 판단의 구체적인 사례를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이 사건 원고는 (1) 약제연구업·의학연구업·성인병연구업·남성의학연구업·여성의학연구업·의료업· 병원업·한의원업·건강진단업 등을 지정서비스로 한 '자생'이라는 서비스표를 1993년 4월 28일 출원하여 1995년 1월 18일 등록하였고 2005년 4월 4일 갱신등록 하였으며 (2) 의료업·한의원업을 지정서비스로 하여 '자생한의원'이라는 서비스표를 1993년 4월 28일 출원하여 1995년 1월 17일 등록하였고 2005년 4월 4일 갱신등록 하였습니다.
또한 이 사건 원고는 약제연구업·의료업·한방병원업·건강진단업 등을 지정 서비스로 하여 '자생한방병원'이라는 서비스표를 1993년 4월 28일 출원하여 1995년 1월 18일 등록하고 2005년 4월 4일 갱신등록 하였습니다. (이하 위 세 서비스표를 ‘선 등록서비스표’라고 합니다)
이후 이 사건 피고는 내과업·물리치료업·병원업·병의원업·비뇨기과업·비만클리닉업·산부인과업· 산후조리업·성형외과업·소아과업·신경정신과업·약국업·약조제업·외과업·원격의료서비스업·원격진료업·의료업·의원업·이비인후과업·침술업·탈모치료업·한방건강관리업·한방물리치료업·한방의료업·한약국업·한의원업·향기치료업·간이식당업·간이음식점업·뷔페식당업·셀프서비스식당업·일반유흥주점업·일반음식점업·일본음식점업·패스트푸드식당업·한식점업·식당체인업·식품소개업·음식조리대행업·음식준비조달업을 지정서비스로 한 라는 서비스표(이하 ‘이 사건 등록서비스표’라고 합니다)를 2008년 2월 25일 출원하여 2008년 10월 25일 등록하였습니다.
이 사건 원고는 2014년 7월 11알 특허심판원에 이 사건 피고를 상대로 하여 이 사건 등록서비스표는 그 출원 전부터 주지·저명한 선 등록서비스표들과 표장·서비스업이 유사하여 수요자를 기만할 우려가 있는 것이고 이 사건 피고가 부당한 이익을 얻으려 하거나 원고에게 손해를 입히려고 하는 부정한 목적을 가지고 사용하는 것이어서 상표법 제 7조 제 1항 제 11호·12호의 등록무효 사유에 해당한다고 주장하면서 등록무효심판(2014당1671호)을 청구하였습니다.
특허심판원은 2015. 5. 19. 이 사건 등록서비스표는 선등록서비스표들과 표장이 유사하지 않아 나머지 점에 관하여 더 살필 필요 없이 선등록서비스표들과의 관계에서 상표법 제7조 제1항 제11호 및 제12호에 해당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원고의 위 심판청구를 기각하는 이 사건 심결을 하였습니다.
이에 이 사건 원고는 위 심결에 불복해 특허법원에 심결취소소송을 제기하였습니다.
특허법원과 대법원의 판단
가. 특허법원의 판단(특허법원 2015년 9월 18일 선고 2015허3887 판결)
특허법원은 이 사건 원고 청구를 다음과 같은 이유를 들어 기각하였습니다.
특허법원에서는 우선 아래와 같이 전체관찰을 통해서 외관·호칭·관념을 대비하여 이 사건 등록서비스표와 선등록서비스표들은 유사하지 않다고 판단하였습니다.
(1) 외관
이 사건 등록서비스표와 선등록서비스표들은 글자수, 구성글자가 달라 외관이 유사하지 않다.
(2) 관념
이 사건 등록서비스표는 국어사전 등에 등재되어 있지 않은 조어이나 앞의 두 음절인 ‘자생’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살아감’ ‘저절로 나서 자람’ 등의 ‘자생’의 의미로 많이 사용되고 ‘초’는 약초, 건초 등과 같이 풀을 의미하는 접미어로 많이 사용되어 전체적으로 ‘스스로 자라는 풀’ 등으로 관념된다.
선 등록서비스표 ‘자생’은 앞서 본 바와 같은 의미의 ‘자생’ 등으로 관념된다. 선 등록서비스표 '자생한의원'과 선등록서비스 '자생한방병원'도 지정서비스업을 표시하여 식별력이 없는 ‘한의원’ ‘한방병원’을 생략한 ‘자생’만으로 관념될 수 있다.
위에서 본 바와 같이 ‘자생초’는 저절로 자라는 ‘풀’을 의미하고, ‘자생’은 저절로 자라는 ‘상태’ 등을 의미하므로 관념이 서로 유사하지 않다.
(3) 호칭
이 사건 등록서비스표는 ‘자생초’로 호칭되고 3음절로 호칭이 짧으며 식별력이 미약하거나 없는 부분을 포함하고 있지 않아 전체로서 호칭되고 일부만으로 약칭되지 않는다.
선 등록서비스표 ‘자생’은 ‘자생’으로 호칭된다. 선 등록서비스표 ‘자생한의원’과 ‘자생한방병원’은 호칭이 5음절 또는 6음절의 ‘자생한의원’ 또는 ‘자생한방병원’으로서 비교적 길고 그중 ‘한의원’ ‘한방병원’은 지정(사용)서비스업을 표시하여 식별력이 없으므로 ‘자생’만으로 호칭될 수 있다.
‘자생초’와 ‘자생’은 앞의 두 음절이 동일하기는 하나 ‘자생초’는 ‘초’라는 음절이 부가되어 전체척으로 3음절이고 부가된 마지막 음절인 ‘초’의 초성이 파열음으로서 비교적 명확하게 발음되어 전체적으로 청감이 유사하지 않으므로, 호칭이 유사하지 않다.
(4) 결론
이상에서 본 바와 같이 양측 서비스표는 표장의 외관·관념·호칭이 모두 달라서 유사하지 않으므로 더 살필 필요 없이 선 등록서비스표들과의 관계에서 상표법 제 7조 제 1항 제 11호 또는 제 12호에 해당하지 않는다.
그렇다면 위와 결론을 같이하여 이 사건 등록서비스표에 대한 원고의 등록무효 심판청구를 기각한 이 사건 심결은 적법하고 그 취소를 구하는 원고의 청구는 이유 없으므로 이를 기각하기로 한다.
이와 같은 특허법원의 판결에 불복한 이 사건 원고는 대법원에 상고를 하였습니다.
나. 대법원의 판단(대법원 2017년 2월 9일 선고 2015후1690 판결)
이 사건 원고의 상고에 대하여 대법원은 다음과 같이 상고를 인용하였습니다. 대법원의 구체적인 판결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둘 이상의 문자 또는 도형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결합상표는 그 구성 부분 전체의 외관·호칭· 관념을 기준으로 상표의 유사 여부를 판단하는 것이 원칙이나 상표 중에서 일반 수요자에게 그 상표에 관한 인상을 심어주거나 기억·연상을 하게 함으로써 그 부분만으로 독립하여 상품의 출처표시기능을 수행하는 부분, 즉 요부가 있는 경우 적절한 전체 관찰의 결론을 유도하기 위해서는 요부를 가지고 상표의 유사 여부를 대비·판단하는 것이 필요하다.
(2) 상표에서 요부는 다른 구성 부분과 상관없이 그 부분만으로 일반 수요자에게 두드러지게 인식되는 독자적인 식별력 때문에 다른 상표와 유사 여부를 판단할 때 대비의 대상이 되는 것이므로 상표에서 요부가 존재하는 경우에는 그 부분이 분리관찰이 되는지를 따질 필요 없이 요부만으로 대비함으로써 상표의 유사 여부를 판단할 수 있다.
그리고 상표의 구성 부분이 요부인지는 그 부분이 주지·저명하거나 일반 수요자에게 강한 인상을 주는 부분인지, 전체 상표에서 높은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인지 등의 요소를 따져 보되 여기에 다른 구성 부분과 비교한 상대적인 식별력 수준이나 그와의 결합상태와 정도, 지정상품과의 관계, 거래실정 등까지 종합적으로 고려하여 판단하여야 한다.
(3) 문자로 이루어진 선 등록서비스표들이 공통으로 가지고 있는 ‘자생’ 부분은 ‘자기 자신의 힘으로 살아감’ ‘저절로 나서 자람’ 등의 의미를 가진 단어로서 지정서비스업이나 사용서비스업과의 관계에서 본질적인 식별력이 있는 반면, 선 등록서비스표들의 ‘한의원’이나 ‘한방병원’ 부분은 그 지정서비스업을 나타내는 부분으로서 식별력이 없다.
나아가 ‘자생한의원’이나 ‘자생한방병원’이라는 서비스표가 ‘한방의료업’ 등에 사용된 기간, 언론에 소개된 횟수와 내용, 그 홍보의 정도 등에 비추어 볼 때 위 서비스표들에서 식별력이 있는 ‘자생’ 부분은 이 사건 등록서비스표의 지정서비스업과 동일·유사하거나 최소한 경제적 견련성이 있는 ‘한방의료업’ 등과 관련하여 일반 수요자들에게 널리 인식되어 그 식별력이 더욱 강해졌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점 등을 종합하여 보면 선 등록서비스표들에서 ‘자생’은 독립적인 식별표지 기능을 발휘하는 요부에 해당한다.
(4) 한편 이 사건 등록서비스표의 문자 부분 중 ‘자생’ 부분은 이 사건 선 등록서비스표 등의 요부와 동일하여 마찬가지로 강한 식별력을 가지는 반면에 ‘초’ 부분은 약초(藥草)나 건초(乾草) 등과 같이 ‘풀’을 의미하는 한자어로 많이 사용되어 그 지정서비스업과 관련하여 약의 재료나 원료 등을 연상시킨다는 점에서 식별력이 높지 않다고 보일 뿐만 아니라, 강한 식별력을 가지는 ‘자생’ 부분과 비교하여 볼 때 상대적인 식별력도 미약하다.
나아가 ‘자생초’가 ‘스스로 자라나는 풀’ 등의 의미를 가진다고 하더라도 이는 사전에 등재되어 있지 아니한 단어로서 ‘자생’과 ‘초’ 각각의 의미를 결합한 것 이상의 새로운 의미가 형성되는 것도 아니라는 점 등까지 보태어 보면 이 사건 등록서비스표의 문자 부분 중 ‘자생’이 ‘초’와 결합한 일체로서만 식별표지 기능을 발휘한다고 보기는 어렵다.
또한 이 사건 등록서비스표 중 네모 도형은 별다른 특징이 없는 부분으로서 문자 부분과의 결합상태와 정도 등에 비추어 위와 같은 판단에 아무런 영향을 줄 수 없다. 이러한 사정 등을 종합하여 보면 이 사건 등록서비스표에서는 ‘자생’ 부분이 독립적인 식별표지 기능을 발휘하는 요부라고 할 수 있다.
(5) 그렇다면 선 등록서비스표들과 이 사건 등록서비스표는 모두 요부가 ‘자생’이라고 할 것이므로 ‘자생’이 분리관찰이 되는지를 따질 필요 없이 위 서비스표들을 ‘자생’을 기준으로 대비하면 그 호칭과 관념이 동일하여 유사한 서비스표에 해당한다고 할 것이다.
본 사안의 상표법상 의의
본 대법원 판례는 △ 둘 이상의 문자 또는 도형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결합상표의 유사 여부를 판단하는 방법을 제시한 점 △ 상표에서 요부가 존재하는 경우 그 부분이 분리관찰되는지 따질 필요 없이 요부만 대비함으로써 상표의 유사 여부를 판단할 수 있는지를 밝힌 점 △ 상표의 구성 부분이 요부인지 판단하는 방법을 제시한 점에서 상표법상 의의가 있습니다.
앞으로 몇 주간 요부관찰이 문제된 사례에 대해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 안승훈 변호사 약력
△ 한국과학기술원(KAIST) 공학사
△ 서울대학교 대학원 공학석사
△ 충남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법학전문석사
△ 뉴욕대학교(NYU) 쿠랑트(Courant) 응용수학 연구소·
스턴(Stern)경영대학원 협동과정 석사
◇ 주요 경력
△ 금융결제원 금융정보보호부 과장
△ 법률사무소 헌인 소속 변호사
△ 변호사 이석환법률사무소 소속 변호사
△ 법무법인 서정 소속 변호사
△ 법률사무소 논현 대표변호사(현)
△ 강남경찰서 자문변호사(현)
△ 대법원 국선변호인(현)